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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이야기

한솥밥의 거리

급식소에는
언제나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
 


손을 잘 타는 달이,
중간쯤 손을 타는 별이,
그리고 언제 봐도 꾀죄죄한 얼굴의 호랭이.
가끔 점박이도 들르고,
요즘엔 새로 나타난 새끼 수컷 한 마리도 있다.
 
달이와 별이를 중심으로 돌보다 보니
달이는 사람 손길을 기다리는 고양이가 되었고,
별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낸다.
 
하지만 호랭이는 다르다.
 
밥시간이 되면 묵묵히 나타나
한쪽에 앉아 우직하게 밥을 먹고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짠한 아이다.


등치가 크고 험상궂은 외모 때문일까,
쥐어터져 온 날도 많았다.
밥에 항생제를 말아준 날도
셀 수 없을 만큼,,,
 


그러다 어느 날,
사진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장면 하나.
같은 구조물 위, 양쪽 끝에 앉은 달이와 호랭이
서로의 시선이 닿을 듯 말 듯,
묘한 균형을 이루며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물어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지내는 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공존’의 방식이니?”

서로 장난치거나 몸을 비비는 사이는 아니지만,
모서리 끝자락을 나눠 앉은 그 거리만큼의 여유로
같은 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묘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한솥밥을 먹지만
서로 밥그릇을 넘보거나
눈빛으로 견제하는 일도 잦다.
 
그래도 이 정도의 거리에서,
이 세상 함께 살아가보자고 너희끼리 약속한 거리일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끔은 동엽이라는 친구가 와서
급식소를 휘젓고 아이들을 놀라게 할 때면
나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낸 적이 많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저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다시 한 공간으로 모여드는 아이들.
서로 달라서 가능한 거리,
그 거리만큼의 평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의 모습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언젠가,
이 거리감이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도
자연스러운 공존의 거리로 이어지는 날이 오기를.
 
나는 오늘도
그 희망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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